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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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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퇴고 전이라 문장의 세세한 변화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로맨스도 리테이크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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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토우야! 작업은 잘 되고 있나?]
[너는 자주 끼니를 거르는 편이니까 걱정이 된단 말이지.]
[담배와 커피는 적당히 하도록! 조만간 상태를 보러 갈 테니까.]

적어둔 플롯을 한 줄 읽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담뱃갑에서 담배를 꺼내려던 순간, 츠카사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는 일에 빠져 주위를 보지 못하게 될 때가 많은 토우야를 환기해주기 위한 츠카사 나름의 특단의 조치로, 생각보다 효과는 꽤 있어서, 그제야 자신이 오늘 커피를 다섯 잔도 넘게 마셨다는 사실과 담배 한 갑을 다 피웠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담배와 커피는 적당히. 마지막으로 도착한 메시지 한 줄을 다시 한번 곱씹으며 토우야는 커피 대신 물을 받고 담배는 책상 위에 돌려놓았다.

한 손으로 적당히 답장을 보내며 문득 스마트폰의 시계를 확인하니 벌써 오후 8시를 넘기고 있었다. 해가 뜰 무렵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던 것 같은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된 건가. 시각을 인지하고 나니 이때다 싶어 주린 배가 제 상태를 호소했지만, 토우야는 주방이 아닌 거실 소파 앞으로 가 텔레비전부터 켰다.

오늘은 목요일. 당장 마감이 코앞이더라도 절대 빠지지 않고 챙겨보는 드라마가 시작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초반부가 조금 잘린 듯했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다. 토우야는 물로 마른 목을 축이며 화면에 집중했다. 그러다가도 블랙아웃 화면이 나올 때면 텔레비전 화면 위에 비친 제 모습에 놀라 앞으로 기울어졌던 몸을 다시 뒤로 젖혀 소파에 등을 푹 기댔다.

마감이 코앞인데 드라마나 보고 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영화는 이따금 본다고 쳐도 드라마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면 이것도 다 그 말도 안 되는 기획 때문에, 공부라든가 자료 수집 느낌으로 보기 시작한 거였지……. 아찔했던 기억을 떠올리는 사이 장면이 전환되었다.

아, 나왔다.

마치 아는 사람이라도 나온 것처럼 토우야는 소파에 기댔던 등을 꼿꼿하게 세웠다. 쓸쓸한 겨울 풍경 속에, 어린 얼굴이 아직 다 벗어지지 않은 배우가 코가 빨개진 채 서 있었다. 이름은 시노노메 아키토. 토우야가 특집호 단편을 작업할 때 출판사 직원이 레퍼런스 삼아 보내준 몇 해 전 단편 드라마에 나온 배우였다. 거기선 딱히 비중 있는 조연도 아니었고 거의 단역으로 나온 거나 다름없었는데,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갔다.


(중략)


“영화화요?”

담당 편집자인 미네모토가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기에 인세 같은 복잡한 이야기라도 하려나 싶어 시간을 내 출판사 회의실까지 갔건만, 대뜸 영화사의 제작자라는 우에다를 소개받아 토우야는 다소 당황하는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기 작품이 어느 정도 인기를 끌고 있는지는 꼬박꼬박 통장에 들어오는 인세라든가, 연재를 제의받으며 받은 계약금이라든가, 큰 상이라든가, 블로그나 SNS의 리뷰,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감상평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었지만, 이렇게 단시간 내에 영화화를 제안받을 줄은 몰랐다. 이 정도 히트를 쳤으니 미디어믹스 화 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하지만.

사실은 이전 작품에서도 만화화 제의까지는 들어왔었는데, 한정된 지면을 이유로 자신이 의도했던 장면이나 묘사들이 축약되고 생략되는 것이 영 꺼림칙해 한 차례 거절한 이력이 있었다. 아마 그런 토우야의 성격을 알고 있으니 애매모호하게 말을 돌려 사무실로 부른 거겠지만. 이 스탠스에는 변함이 없어서, 토우야는 우에다가 신이 나서 늘어놓는 이야기를 대충 흘려들었다. 어떤 말로 거절해야 할지, 다음부터 이런 일로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며.

“사실 캐스팅도 생각해봤거든요. 주인공인 아야토 역에 시노노메 아키토 씨는 어때요? 아야토도 가수 출신 배우고, 작중의 묘사를 보면 아무래도 제격이다 싶은데. 하하, 물론 작가님께서 원하시는 인선이 있으시다면 저희도 얼마든 수용할 테니까요. 부디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십사……”

그러다가 대뜸 들려온 낯익은 이름에,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예의상 보고 있던 서류에서 고개를 들었다. 내내 심드렁하던 토우야가 조금 반응을 보이자 우에다는 금세 신난 건지, 요즘은 이 배우도 느낌이 좋더라고요, 하며 배우들 사진을 연달아 보여주기 시작했다.

주인공인 이즈모 아야토는, 조금 창피하긴 하지만, 토우야가 그의 출연작을 레퍼런스 삼아 보며 개인적인 감상을 덕지덕지 발라 정리한 시노노메 아키토 인물 차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걸 보고 곧장 아키토를 추천할 정도라면 굉장한 눈썰미 있는 사람 아닐까……? 토우야는 거절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를 완전히 잊고 말았다. 사실 눈썰미는 핑계고, 그냥 아키토가 아야토로서 움직이는 걸 보고 싶었을 뿐이겠지만…….

“저기.”
“아, 죄송합니다. 저 혼자 너무 신나서 떠들었네요. 말씀하세요.”
“주인공인 아야토 역은…… 시노노메 씨가 좋겠네요.”
“네? 어, 그럼, 영화화에 동의해주시는……?”
“……아야토 역을 시노노메 씨가 해주시고, 내용 각색은 거의 없다는 전제라면요.”

아무리 원작자라지만 이 정도 욕심을 부려도 될까. 토우야는 큰 딜을 걸었다고 생각했으나, 우에다는 그런 건 개의치 않는 듯, 그럼 다음에 만날 때 정식으로 계약서를 가져오겠다며 기쁜 얼굴로 토우야에게 손을 내밀었다. 토우야는 공손한 태도로 손을 맞잡은 채 가볍게 흔들어 악수하곤 자리에서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아, 그런데…… 제가 시노노메 씨를 고집했다는 건 당사자나 사무소 쪽에는 비밀로 해주셨으면 하는데요.”
“어어……, 그쪽에서 들으시면 오히려 기뻐하실 텐데도요?”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원작자가 직접 캐스팅을 고집했다고 하면 사무소 쪽에서도 좋아할 거고, 여러모로 화제가 될 텐데……. 우에다는 다소 아쉬운 눈치였으나, 일단 영화화에 동의해줬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내 활짝 웃는 얼굴로 그러자며 고개를 끄덕였다. 토우야는 다시 한번 잘 부탁한다는 인사를 하곤 회의실을 나섰다.


(후략)

 

2. 페어웰 썸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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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일단 집에 가서 씻고, 오후 스케줄 갈 준비나 하자. 아키토는 침대 옆에 떨어져 있는 구두를 들고 집에서 나왔다. 편의점에서 해장할 만한 걸 뭐라도 사서 갈까, 하며 대로변까지 나와 제법 규모가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엥……?”


뻑뻑한 눈을 비비며 컵라면 진열대를 살피는데, 분명 최근에 패키지를 리뉴얼한 걸로 아는 제품이 굉장히 옛날 디자인으로 포장되어 있었다. 행사용으로 나온 건가. 눈을 가늘게 뜨며 다른 상품들도 확인해 보니, 그쪽도 대부분이 그랬다. 심지어는 최근 단종된 상품까지도 진열되어 있고. 여기 무슨 이벤트라도 진행하는 건가? 아키토는 영 찝찝한 기분이 들어 컵라면은 패스하고 음료 코너로 가 이온 음료를 찾았다. 숙취에 시달릴 때면 매니저가 종종 사다 준 음료가 있는데……. 제법 독특한 디자인이라 곧장 눈에 들어올 줄 알았더니, 아무리 냉장고를 뒤져도 보이지 않아 아키토는 뺨을 긁적이며 카운터로 갔다.


“네? 그런 제품은 처음 들어보는데요?”


제품명을 말하며 재고가 없느냐 물으니 직원이 외려 이상하게 아키토를 쳐다보았다. 저게 무슨 소리지? 유명 K팝 아이돌 그룹이 광고를 찍고 완전히 공전의 히트를 쳐 전국 편의점에 쫙 깔린 제품을 처음 들어본다고? 서로를 이상하게 보는 눈이 공중에서 한참 대립했다. 아무리 봐도 이 직원이 장난하는 것 같진 않은데, 그냥 세상 돌아가는 일에 어두운 건가……. 아키토는 찜찜한 마음을 한 겹 더 쌓으며 다른 음료를 집어 들고 와 주머니에 있던 현금으로 계산했다.


안 그래도 숙취에 시달리는 몸인데 불볕 같은 더위와 눅진한 습기가 더해지니 죽을 맛이었다. 방금 산 음료의 절반을 들이키고도 계속 목이 타서, 걸어가지 말고 버스나 타야겠다고 생각해 경로를 틀었다.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얼마 전 낡은 상가 건물을 헐고 버스 정류장과 지하철역을 설치해, 본가에서 오피스텔까지 가는 게 전보다 훨씬 편해……


……졌었는데.


“이건 또 뭐야……?”


왜 상가 건물이 아직도 있지……? 완전히 넋이 나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멎어버린 아키토의 귓가에, 이어폰도 없이 뉴스를 보는 어떤 아저씨의 휴대폰 음성이 그대로 와 꽂혔다.


“201X년 7월 7일 일요일, 뉴스 속보입니다…….”


귀를 의심했다. 속보라며 다급하게 뉴스를 읊는 앵커는, 이미 10년도 전에 지나버린 일을 열거하고 있었다. 저게 뭔데? 아니, 10년 전의 뉴스 속보 같은 걸 흥미 삼아 보는 사람이 있기나 한가? 아키토는 그런 건 웬만해선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침부터 내내 쌓아온 찜찜함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갑자기 본가에서 눈을 뜬 것. 옛날 패키지의 컵라면과 이미 한참 전에 단종된 상품이 진열되어 있던 것. 공전의 히트를 친 상품의 이름을 처음 듣는다는 직원과 이미 없어진 지 오래인 상가 건물. 10년 전의 뉴스 속보.


설마…… 내가 지금 과거로 와 버린 건가?

 


(중략)

 

 

아키토는 토우야의 집 담벼락에 기댄 채 주저앉았다. 한창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기세가 잠시 꺾였다. 토우야가 집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그제야 들었다. 일요일이니 자신이 아는 토우야라면 분명 있을 테지만, 고등학교 3학년의 그에 대해서 아키토는 잘 알지 못했다.

 

졸업식에서 듣기론 좋은 대학에 갔다고 했으니 공부도 꽤 열심히 했겠지. 나 같은 거랑은 전혀 다르게 주말에도 시간을 쏟으면서……. 아키토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그 시절의 토우야를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추측해보았다. 공부는 집에서 했을까. 도서관에 갔을지도 모른다, 걘 책을 좋아하니까. 참고서에는 무슨 색으로 필기를 했을까. 주로 긋는 형광펜은 무슨 색이었을까. 하루에 몇 시간이나 잤을까. 숨은 좀 돌리면서 했을까.


내 생각은…… 했을까.


“아키토?”


어림도 없다며 자신을 채찍질하는 사이 들려온 목소리. 아키토는 고개를 숙인 채 자책하듯 머리를 헝클이다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있었다. 국화꽃도 없이, 검은 액자에 둘러싸이지도 않은 채, 자주 입던 재킷을 입고 한 손에는 편의점 봉투를 들고 있는 토우야가.


“……시라이시가 아키토는 오늘 사이타마에 있는 친척 집에 간다고 한 것 같은데. 잘못 알았던 걸까?”
“아, 그게……”
“게다가 아키토 옷차림도…… 낯설고. 못 본 사이에 취향이 바뀌기라도 한 거야? 귀걸이도 하나도 없네.”


토우야는 자기 눈앞에 있는 아키토가 자신이 알고 있는 아키토와 다른 인물이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키나 체격 같은 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차림새를 제하면 크게 위화감을 느끼지 못할 법도 했다. 애초에 자신이 아는 이와 다른 사람이라고 대번에 생각할 만한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기도 하고.


“저기, 토우……야.”
“응.”


만나서 뭐라고 할지 결국 끝내 정하지 못했는데, 이런 식으로 준비도 없이 마주치다니. 아키토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에서 올려다볼 때와 달리, 똑바로 곧게 서서 얼굴을 마주하자 줄곧 느끼고 있던 당황스러운 감정을 모두 밀어내고 떨림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무슨 떨림인지 명확히 규정하기도 어렵다. 설렘인지, 재회에 대한 기쁨인지, 아니면 외려 슬픔인지. 도무지 판단이 서지 않아 아키토는 이곳까지 달려올 때처럼, 그저 본능이 이끄는 대로 따랐다. 떨리는 손으로 토우야의 손을 낚아채고 바르르 떨리는 입술로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를 꺼낸 것은 전부, 그 때문이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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