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아이러니> 본문 샘플

 

 

(전략)


“소개팅이요?”

가게 유니폼을 챙겨 입고 칵테일 잔을 하나하나 열심히 닦던 아키토에게, 이가라시가 대뜸 소개팅을 제안했다. 나보고 팔자니 뭐니 하던 거 당신 아냐? 속으로 불쑥 솟아오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은 가까스로 참아냈으나, 표정이 썩어버리는 것만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물론 한쪽 입꼬리만 비뚜름하게 올린 아키토의 표정은 이가라시에게 딱히 문제가 되진 않았지만.

“나카타가 어떻게 좀 해보라고 성화더라고.”
“하……. 그 선배가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저 진짜 필요 없어요.”
“진짜? 내가 소개해주는 건데도? 이런 기회 흔치 않아.”
“아니, 이번엔 저 진짜로 필요,”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만나 봐. 어? 걘 진짜 아키토한테는 아까운, 아니, 아키토한테 딱 맞는 애야.”

이 인간, 방금 아깝다고 하지 않았어? 황급히 수정했으나 이미 귀에 꽂힌 말에 비뚤어진 표정을 고치지는 못했지만, 솔직히 구미가 당겼다. 저에게 쓰레기 꼬일 팔자니 뭐니 한 장본인 주제에 쓰레기를 소개해줄 리는 없고. 자기가 보기에도 몹쓸 놈들은 솎아내고 쳐내고 엄선해서 하는 말 아닐까? 구미가 당기다 못해 펄럭펄럭 흔들렸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뭐, 한 번 정도는…….”

선배한테는 신세 지고 있는 것도 많으니까, 선배 얼굴을 봐서라도 뭐, 한 번은 나가줄 수 있지. 암, 그렇고말고.



(중략)


[어디쯤이세요? 저는 다 왔는데]

만나는 날까지도 한 마디 나누지 않은 대화창에 첫 메시지가 뜬 순간이었다. 기다리다 보면 답장 오겠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어라? 주변을 오가며 몇 번인가 보았던 이 카페는 그리 손님이 많은 이미지가 아니었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지 손님으로 북적거려 아키토가 앉을 만한 빈자리가 단 한 곳도 없었다. 어쩌지? 약속 장소를 바꿔야 하나? 고민하며 휴대폰을 꺼내자, 상대에게서 메시지가 돌아와 있었다.

[전 이미 도착해서 앉아있습니다.]

벌써? 아키토는 메시지를 확인하자마자 답장을 보내는 대신 고개를 들어 카페 내부를 돌아보았다. 열 개가 조금 넘는 테이블 중, 남자 혼자 앉은 게 다섯이나 됐다. 저 중 누구지? 아키토는 조심조심 카페 안을 걸으며 혼자 앉은 남자들의 얼굴을 살폈다. 분명 ‘아키토한테 딱’이라고 했고, 이가라시 선배라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에 대해 A부터 Z까지 다 알고 있을 테니, 분명 눈 반쯤 감고 봐도 제 스타일인 남자가 있……어야 되는데. 눈에 채는 건 이상하게도 전부 꽝이었다.

“아오야기 씨……?”

그나마 제일 이상형에 가까운 남자에게 가서 묻자 “아닌데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때부터 시작해 마음속으로 매긴 순위상의 4위 남자까지 가서 아오야기 씨냐고 물었지만 돌아오는 답은 전부 No. 그리하여 남은 건 한 명. 아키토는 설마, 하며 고개를 돌렸다. 설마 저거……? 저도 모르게, 반듯하게 앉은 남자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약속 상대를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이 아닌 책(심지어 영문인 듯함)을 보고 있는 남자? 아니, 나는 저렇게 누가 봐도 건실하고 성실한, 눈에 그린 듯한 엘리트 스타일은 절대 싫은데요……?!
아키토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이가라시 선배에게 따지고 싶었지만, 혹시나 저 사람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마지막 희망을 걸며 남자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 혹시, 아오야기 씨……?”
“아, 네……. ……어, 음, 혹시, 시노노메 씨……?”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앉아 있던 남자가 놀란 눈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로 말없이 눈을 몇 번 깜빡이며 저를 보다가 끝내 고개를 갸웃하는 것이, 누가 봐도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렇게 두 사람 모두 프리즈. 아키토는 직감했다. 저쪽도 이가라시 선배한테 속았구나. 뭐라 말도 못 하고 아키토의 얼굴이나 행색을 흔들리는 눈으로 훑는 것이,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 판이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의 낯이었다. 무조건.

서로 취향 아닌 사람끼리 하는 소개팅, 의미가 있긴 해?


(중략)


“시노노메 씨.”

전시회를 보고 나온 애매한 시각, 묘하게 헛헛한 배를 채우기 위해 들어온 디저트 카페였다. 아키토의 입에는 단맛 한 줌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담백한 버터 쿠키를, 그마저도 달다는 듯 잘게 쪼개서 겨우 몇 입 넣던 그가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크림에 시럽에 과일까지, 단맛을 낼 수 있는 모든 게 잔뜩 얹어진 수플레 팬케이크를 포크로 조각내 한입 가득 넣던 아키토가 그와 눈을 맞추었다.

“오늘 별로 재미없었죠?”

아뇨, 오늘만이 아니라 매번 재미없었어요. 아키토는 차마 그 말을 하진 못하고 그냥 어정쩡하게 웃으며 입에 있던 것을 꿀꺽 삼켰다.

“계속 지루해 보였거든요.”
“아…… 그게, 음, 죄송……”
“아뇨, 오히려 제가 미안한 일이니까 사과하진 마세요.”

괜찮다고 말하며 아오야기는 제 앞에 놓인 커피를 한 모금 들었다. 그래도 그와 세 번 만나는 동안, 그가 자신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것 외에도 알게 된 사실이 몇 개 더 있었다. 굉장히 예의가 바른 사람이라는 것. 사소한 행동 하나에도 과할 정도로 배려가 넘친다는 점. 조금 무뚝뚝하긴 해도, 너무 착한 사람이라는 것……. 아키토는 포크를 괜히 꽉 쥐었다. 확실히, 선배 말대로 나한텐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괜히 나랑 만나면서 시간 낭비하는 것보단, 더 잘 맞는 사람을 만나는 게 낫지 않을까? 아키토는 결국 결단을 내렸다.

“저기, 아오야기 씨. 제가 생각해봤는데…… 음, 저희는 좀, 잘 안 맞는 것 같지 않아요?”
“……네, 그렇죠.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랬고.”
“그, 그래요?”

상대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니, 그건 좀 다행인가. 아키토는 포크 끄트머리로 반 정도 비워진 접시를 괜히 긁었다.

“그럼, 그냥 친구로 지내는 건 어떤가요?”
“네?”
“마침 동갑이기도 하니까요.”

소개팅 상대랑 정말 친구가 될 수 있나? 친구로 시작한 사람은 끝까지 친구였고, 사귀던 사람과 친구로 남은 적은 없었는데. 아키토는 접시만 긁던 포크로 팬케이크를 한 번 더 떠서 입에 넣고 우물거리다 이내 생각을 포기했다. 사귀는 걸 목적으로 만난 사이이긴 해도, 진짜 사귄 것도 아니고. 자길 했어, 키스를 하길 했어, 뭘 했어.

“뭐, 좋아요. 그럼 앞으로 이름으로 부르는 거 어때요? 말도 놓고.”
“그게 편하면 그렇게 해요.”
“그래, 토우야. 앞으로 잘 부탁해.”
“응, 아키토. 나도 잘 부탁해.”

이름으로 부르며 말을 놓고 나니, 늘 무뚝뚝하게 굳어 있던 토우야의 표정도 조금은 부드러워진 기분이 들었다. 반 정도 사라진 팬케이크 위에서 미끄덩거리며 쓰러지는 크림을 포크로 크게 떠 입에 넣은 아키토가 턱을 괸 채로 토우야를 빤히 보고 있자, 피하지 않고 시선을 마주하던 토우야가 조금 웃더니 물었다.

“아키토의 이상형은 나랑 거리가 멀지?”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