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애의 에티카> 본문 샘플

 

 

상세 인포는 추후 추가됩니다.

퇴고 전이라 문장이 약간 수정될 수 있습니다.

 

(전략)

 

 

“뭐 찾는 거라도 있으세요?”

오늘은 좀 여유가 있으니까 한 번 도와주자. 보통 때라면 어림도 없었을 친절을 베풀기 위해 낯선 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리고 나선 아키토다. 그러자, 아키토보다 손가락 하나 정도 더 큰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했다. 역시나, 크게 티는 안 나지만 무언가 당황한 기색이 미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모르는 척하지 않고 말을 걸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아, 그게……. 오늘이 첫 출근인데, 제가 아무것도 몰라서요.”
“하아? 첫 출근이요?”

뭐야, 신입사원인가? 아키토는 저도 모르게 그의 행색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쭉 훑었다. 신입사원은 보통 봄에 들어오는 거 아닌가. 이런 곳은 대부분 공채인지 뭔지 그런 걸로 뽑는다고 들었는데……. 음, 따로 뽑기도 하는 건가? 모르겠다. 대기업 마나님들 사정을 내가 어떻게 알겠어. 아키토는 말끔하게 단장한 머리와 비싸 보이는 고급 수트, 반짝거리는 구두코까지 확인한 뒤 다시 그와 눈을 마주했다.

“어느 사무실 찾으세요? 제가 여기서 제법 오래 일해서 웬만한 건 아는데.”
“전략기획본부……를 찾고 있습니다.”
“어……. 본부는 잘 모르는데. 전략팀이랑은 다른 건가요?”
“아, 전략팀이랑 같다고 봐도 됩니다.”
“그래요? 그거면 7층일걸요. 저쪽 코너 돌면 엘리베이터 나오니까 타고 가세요. 여기 1층 구조가 특이해서 처음 오면 다들 저거 못 찾거든요.”
“그렇군요. 감사합니다, 신세를 졌습니다.”

단정하고 정갈한 인상의 남자가 허리를 숙여 아키토에게 연신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인사를 더한 그가 아키토가 가르쳐준 방향으로 걸음을 틀었다. 앞모습과 다를 것 없이 멀끔한 뒷모습을 한참 보다가 결국 그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 하고 부르자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길을 헤매는 중에도 변화가 미미하던 얼굴 위에 놀란 표정이 잠시 스쳤다가 지나갔다. 이쪽으로 와 봐요. 손가락을 까딱까딱하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멀뚱멀뚱 아키토를 보다가 조금 전처럼 다시 가까이 와 섰다.

“아침에 급하게 나오셨나 보네요. 넥타이 뒤가 더 긴데, 모르셨죠?”
“아아…….”

그는 아키토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걸고 있는 넥타이를 내려다보았다. 평소에 하는 대로 한 것 같은데, 거울을 보지 않고 했더니 실수라도 한 모양이었다. 왠지 민망한 기분이 들어 입 안에서 제 혀를 꾹 씹었다. 물론 아키토의 눈에는 그가 느끼고 있을 ‘민망함’이라는 감정이 전혀 전해지지 않았지만……. 넥타이를 풀어서 다시 걸어줄 만큼으로 거리가 좁혀지자, 왠지 민망한 기분이 더욱 더해지는 기분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과 너무 단번에 가까워져서 그런 걸까? 생각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은 첫인상이라는 게 중요하잖아요. 첫 출근인데, 이런 건 신경 써야 할 것 같아서요.”
“……그렇죠.”

빠르게 넥타이를 다시 매고 목이 답답하지 않을 정도까지 조인 아키토가 다 됐다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는 아까도 충분히 했던 감사 인사를 몇 배는 더 돌려주려고 애쓰고 있었다. 아키토는 괜찮다며 너스레를 떨었고.

“도움만 잔뜩 받아서……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괜찮다니까요. 뭐, 정 갚고 싶으면, 저기 카페로 커피나 자주 마시러 오세요. 저 저기서 일하거든요. 물론 매출 올려준다고 해서 제 월급이 오르진 않지만…….”

아키토의 말에 그는 아키토의 얼굴 한 번, 아키토가 가리키는 방향에 있는 카페 한 번, 그렇게 두어 번 번갈아 본 후에야 알겠다고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오픈해야 해서 가볼게요. 첫 출근인데 힘내요, 신입사원 씨.”

아키토는 곧 임박한 카페 오픈 시간을 맞추기 위해 그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보낸 뒤 카페 쪽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8시에 카페 문을 열고 적어도 8시 15분부터는 손님을 맞이해야 했으니까. 문에 걸린 자물쇠를 풀고 안으로 들어가며, 아키토는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다시 한번 눈에 담았다. 키도 크고 어깨도 넓고, 여러모로 좋은 피지컬인데 앞머리랑 안경으로 얼굴을 다 가리고 다니네. 아쉽다. 여자친구가 없나? 있으면 당장 관리해줬겠지. 처음 보는 사람을 상대로 별별 생각을 다 하던 아키토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됐다, 오픈 준비나 하자. 길어진 뒷머리를 고무줄로 묶고, 그러고도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은 핀으로 고정시켰다. 이윽고 카페 안에는 커피 머신 작동시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중략)

 

 

“커피만 드시지 말고 이것도 드세요. 아, 쿠키 싫어해요?”

점심을 먹지 않고 카페에서 커피로 대충 때우는 사람이 토우야 한 사람뿐일 리는 없지만, 그래도 다른 손님과는 달리 서로 안면도 트고 이래저래 말을 나눈 사이니 이 정도 호의는 베풀 수 있는 거 아닐까. 아키토는 그 누구도 요구하지 않은 변명을 내면에 켜켜이 쌓았다.

“아뇨, 좋아해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자주 해주셔서. 아, 계산…….”
“괜찮아요, 어차피 매일 남거든요. 아, 사장님한텐 비밀로 해주세요. 얼굴 보실 일도 없겠지만.”
“감사합니다…….”

토우야는 고개를 가볍게 숙여 예를 표하곤, 아키토가 건넨 쿠키 봉지를 열었다. 작은 쿠키를 꺼내어 끄트머리를 오도독 소리를 내며 베어 무는 모습을 아키토는 바에 기댄 채로 가만히 지켜보았다. 어차피 점심시간이 한참 지나고 오후 업무 시간에 들어간 후였고, 사옥 내에 들어와 있는 카페라 회사 사람들 말고는 손님이 없기도 하고. 이렇게 오후 알바와 교대할 때까지 농땡이 좀 부려도 되겠지. 쿠키를 두어 입 먹고 나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는 식으로 이어가는 토우야를 빤히 보던 아키토는 자기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리드를 벗겨낸 컵 안에서 폴폴 피어오르는 김이 토우야의 안경에 서리는 모습 때문에…….

“엇, 잠깐, 시노노메 씨?”
“안경에 김이 서려서요. ……어?”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반 정도는 닦아주겠다는 선의로, 나머지 반 정도는 약간의 장난으로 안경을 벗겨냈다. 제법 당황하는 토우야의 반응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아키토가 흠칫 몸을 굳혔다. 돌려달라며 손을 내미는 토우야를 보며 안경을 들고 있는 손을 뒤로 슬쩍 빼던 아키토는 홀린 듯이 손을 뻗어 눈가까지 길게 덮고 있는 토우야의 앞머리를 슬쩍 걷었다. 눈 색이 되게 옅다……. 속눈썹도 길고. 멍하니 앞머리와 안경이라는 무장이 해제된 토우야의 얼굴을 빤히 보던 아키토는 토우야의 손에 의해 앞머리를 걷고 있던 손목이 붙잡혀진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안경을 돌려주었다.

“아,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그만…….”
“아뇨, 괜찮아요. 조금 당황해서 그런 거니까.”
“……아오야기 씨는 인물을 전부 가리고 다니네요?”
“네?”
“얼굴이 아까워요. 앞머리 좀 자르고 렌즈로 바꾸면 훨씬 좋을 텐데.”
“그런……가요.”

아키토는 바 테이블에 몸을 완전히 묻으며 엎드린 채로,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있는 토우야의 얼굴을 아래에서 빤히 올려다보았다. 응, 확실히. 제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토우야의 얼굴이 아주 미미하게 붉어진 것이 보였다.

“뭐, 꼭 그렇게 하라는 건 아니니까요. 누구든 자기 스타일이 있는 거고.”
“그래도 생각해서 말해준 거니까, 고려해볼게요.”

오도독, 다시 한번 쿠키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채 멎기도 전에, 아키토와 교대해야 할 오후 알바가 들어왔다. 아키토는 토우야에게 가보겠다며 인사를 건네곤 걸치고 있던 앞치마를 벗었다. 직원 휴게실에 들어가 핀을 꽂고 뒤로 질끈 묶어 정리했던 머리를 손보고, 아침에 입고 왔던 겉옷을 걸친 뒤 가방까지 어깨에 걸치고 나올 때까지, 토우야는 바 테이블에 그대로 앉아있었다. 아키토가 오후 알바에게 수고하라는 인사를 남긴 뒤 카페를 나서자, 그제야 토우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기다리기라도 한 건가. 아키토는 그리 생각했다가 고개를 저었다. 에이, 설마.

“그럼 오후에도 일 열심히 해요. 내일은 굶지 말고.”
“네. 시노노메 씨도 조심히 가요.”

손을 흔들어 인사한 뒤, 아키토는 귀에 이어폰을 꽂으며 건물을 나섰다. 토우야가 그 자리에 서서 아키토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남몰래 배웅했다는 사실은 아마 모를 것이다.

 

 

(후략)